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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정신건강연구소 상담위원들의 칼럼입니다.

[박상희 소장] 경향신문_장애아 둔 부모들 앞 ‘사회의 벽’…언제쯤 무너질까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10)]

  • 관리자
  • 202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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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둔 부모들 앞 ‘사회의 벽’…언제쯤 무너질까

박상희(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10) 편견과 혐오에 마음 아파요

장애아 둔 부모들 앞 ‘사회의 벽’…언제쯤 무너질까

■대화

“아이는 예뻐요. 내 새끼니까요. 아직도 잘 때 엄마 품을 찾아요. 10살짜리 동생보다 애기 같죠. 14살인데 유치원생 지능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우리 아이는 다행히 까치발로 걸어요. 많이 노력해서 걷게 된 거에요. 못 걷는 아이들도 많아요. 지체장애와 지적장애가 함께 온 경우가 그래요. 병명은 강직성 양마비성 뇌성마비예요.”

―민수(가명)어머니, 정말 어려운 시간을 지나 오셨네요.

“조산을 했어요. 태어났을 때 800g 정도밖에 안됐어요. 그 작은 아이의 몸에 각종 의료기구가 달렸죠. 수없이 병원을 오갔어요. 14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잘 안나요. 그냥 정신없이 아이 돌보면서 여기까지 왔죠. 앞날을 모르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알면서는 못하죠. 수없이 마음이 무너졌어요. 그래도 저희는 아빠가 공무원이라 먹고살 만하니 병원도 데리고 다니고 물리치료도 받죠. 아이 치료비만 월 300만원 정도 들어요. 다행히 저는 임신 때 들어놓은 보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성장기에 지속적인 치료가 없으면 아이가 다시 걷지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서만 생활할까봐 치료를 쉴 수 없어요.”

―모성애는 정말 위대한 것 같아요.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벅차실 텐데 경제적 부담도 이리 크다니요. 저는 부끄럽게도 경제적 고통까지는 생각을 못했었어요.

“현실적으로 정말 어려운 문제는 학교예요. 학교가 너무 없어요. 복지관도, 병원도 턱없이 부족해요. 사회적 편견과 혐오도 정말 마음 아프죠. 얼마 전에도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저런 애를 왜 집밖으로 데리고 나오냐’고 소리치더라고요. 아이는 운동이 필요한데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 모습을 보기 싫어하니 엄마들 마음이 무너져버리고 말아요.”

―아픈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 엄마들은 번아웃되는데 거기에 학교, 복지관, 병원을 다 찾아다녀야 하는군요. 그리고 타인들이 무심코 던지는 아픈 이야기들에 얼마나 마음 아프셨어요. 어머님께서 가장 힘드신 것은 무엇인가요?

“제일 걱정하는 일은 ‘내가 없으면 우리 아이는 어떻게 하지’ 하는 것이에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갈 곳이 없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그래도 작으니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청소년만 돼도 다루기 힘들어지니까 다들 더 기피해요. 저는 나이가 들어가고 우리 아이는 더 커가니 앞으로가 더 막막하죠. 평생교육원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제가 만난 어머님들도 다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가장 무서운 것이 내가 죽은 후에는 우리 아이는 누가 돌보냐 하는 것 말이에요.

“동생에게 미안하죠. 아직 어린 아이니 엄마는 오빠만 예뻐한다고 하면서 질투할 때가 많아요. 샘내다가도 가끔 ‘엄마 걱정 마 내가 커서 오빠 돌볼게’ 라고 하지요. 10살 아이가요. 그 애가 무슨 힘으로 오빠를 돌보겠어요. 오빠처럼 챙겨주지 못하니 미안할 따름이에요.”

―아들 위주로 생활이 돌아가니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시는군요. 그런데 저는 어머니 건강도 걱정이 돼요.

“우울증은 당연히 있어요. 그런데 당장 아이의 손발이 되어주어야 하니 우울증에 빠져 있을 틈도 없어요. 활동보조 선생님이 큰 도움이 되지만 그래도 일어나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엄마가 다 해줘야 해요. 옷입히기, 씻기기, 휠체어 태우기, 걷게 하기 등등이요. 먹는 게 예민해서 음식을 잘게 다져서 죽처럼 해서 먹이는 아이들도 많아요. 간간히 언론에서 엄마가 장애아이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시군요. 남의 이야기로 안들리시는 것 충분히 이해가 돼요.

“며칠 전에는 같이 학교 다니던 한 아이가 천국에 갔어요. 엄마들도, 아이들도 다 우울했고, 부검하는 곳에 몇몇 엄마가 따라갔어요. 장례식장 다녀온 엄마들이 ‘그래도 저 엄마가 부럽다. 살아있을 때 아이를 먼저 보냈으니 지금은 슬퍼도 나중에는 마음이 편하지 않겠어…’ 라고 했어요. 그리고 솔직하게 ‘저 엄마는 임무를 끝냈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요. 평범한 엄마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일 거예요. 우리 아이가 살아 있을 때 장애인에게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에요.”

장애인에 대한 시민사회의 성숙도는 국가의 품격을 보여주는 중요 지표이다. 사진처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외치는 시위가 사라지도록 우리 모두가 힘과 마음을 모을 때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장애인에 대한 시민사회의 성숙도는 국가의 품격을 보여주는 중요 지표이다. 사진처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외치는 시위가 사라지도록 우리 모두가 힘과 마음을 모을 때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제언

우리나라는 이제 명실 공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진정한 선진국이란 뭘까. 국민소득 4만 달러에 들어서면 선진국일까. 나는 선진국의 지표가 경제적 성과에만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진정한 선진국의 자긍심은 사람을 대한 태도에서 나온다고 파악하고 싶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성숙한 시민의식, 평등한 기회 제공 등이 그것들이지 않을까.

미국에서 3년 동안 거주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장애를 지닌 아이 부모들을 여러 명 만났다. 미국 사회도 여러 사회문제를 지니고 있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장애아이 부모들은 국가의 복지제도로부터 큰 도움을 받고 있었다. 교육과 돌봄의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 장애인복지 서비스 역시 양적으로, 질적으로 크게 성장해 온 것은 사실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지체장애 또는 지적장애를 지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높고 거대한 벽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교육기관이 턱없이 적다. 특수교육대상자의 30%만이 특수학교에 갈 수 있을 정도로 학교가 부족하다. 서울 시내 8개구에는 아직도 특수학교가 없다. 지방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특수학교 입학이 서울대학교 입학보다 더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특수학교를 다니게 되면 한시름 놓는다고 하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이 2~3시간 통학을 하고 있고, 교사의 수도 필요에 미치지 못한다.

몇 년 전 이슈가 됐던 서진학교 설립 때 보았던 장애아이 어머니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학교 설립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극에 달하자 어머니들은 무릎을 꿇고 “지나가다가 때리시면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라고 절규했다. 민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면서 서진학교 어머니들만이 아닌 모든 장애아이 어머니들이 같은 심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서진학교는 2020년 감격스러운 개교를 했고, 2021년에는 서울특별시 건축상을 받았다. 학교가 문을 열자 정원의 두 배 이상 되는 아이들이 입학하기를 희망했지만, 공간과 지원 인력에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제2의, 제3의 서진학교가 만들어져야 한다.

미국 장애인 운동을 이끈 주디스 휴먼은 장애운동의 핵심이 평등과 공정에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휴먼은 어렸을 때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인한 사지마비 장애인이기도 했다. 휴먼에 따르면, 장애인 운동의 핵심은 평등과 공정에 있다. 여기서 평등이란 모든 사람들에 대한 동일한 대우가 아니라 ‘접근 기회의 형평성’이다.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져야 하는 게 공정한 것이다.

나는 지적장애를 지닌 아이들의 어머니들과 집단상담을 하며 이들의 심리적 고통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에서 오는 우울감과 좌절감, 다른 자녀들에게 갖는 죄책감과 불안, 부부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분노, 사회로부터 비롯되는 서러움과 소외감 등등.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의 경우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진정한 선진국 시민이라면 장애인에 대한 시민의식이 더욱 성숙돼야 한다. 장애인들은 장애 그 자체보다 사회적 편견과 혐오 때문에 더 많은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이들에게 도움이 되진 못할망정 편견과 혐오로 인한 상처를 더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박상희 소장은

장애아 둔 부모들 앞 ‘사회의 벽’…언제쯤 무너질까

이화여대에서 목회상담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소장을 맡고 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위의 사례는 유튜브채널(박상희의 심리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무료심리상담(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에서 4월3일부터 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서 발췌했습니다.


<사진/기사 출처: 경향신문>


<기사원문>▶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204011616025

 

[Youtube 박상희의 심리 스튜디오] "편견과 혐오에 마음 아파요” - [구해줘! 내 맘] 10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