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상담위원들의 칼럼입니다.

[박상희 소장] 경향신문_삶의 무게 내려놓고 마음껏 울어 보렴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8)]

  • 관리자
  • 2022-03-18

첨부파일 :

삶의 무게 내려놓고 마음껏 울어 보렴

박상희(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8)엄마·아빠 없이 남동생 돌보는 유진이

여전히 적지 않은 아이들이 무관심 속에 내팽개쳐지고 있다. 스스로 집을 얻고, 생활필수품을 사고,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일도 어렵지만, 혼자서 외로움,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게 더 힘들 수도 있다. 어른스러운 아이들은 많고, 어른 같은 어른들은 적은 우리 사회. 나는 어떤 어른일까.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여전히 적지 않은 아이들이 무관심 속에 내팽개쳐지고 있다. 스스로 집을 얻고, 생활필수품을 사고,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일도 어렵지만, 혼자서 외로움,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게 더 힘들 수도 있다. 어른스러운 아이들은 많고, 어른 같은 어른들은 적은 우리 사회. 나는 어떤 어른일까.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상담 신청

아빠가 교통사로로 세상을 떠난 그날 밤 저는 교회에서 잠들어 있었어요. 아빠는 택시 운전을 하셨어요. 엄마는 제가 세 살 때 집을 나가 저는 교회에서 자라다시피 했어요.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한참 멍하게 있었어요. 그 때 저는 중2였어요. 많이 슬펐어요.

아빠는 저희 남매를 많이 사랑해주었어요.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아빠는 알콜중독자가 됐어요. 그래서 고아원에서 몇 년 지내기도 했어요. 하지만 아빠는 스스로 병원에 입원해 술을 끊은 후 저희를 데리고 나왔어요. 쉬는 날에는 들로, 산으로 저희를 데리고 다녔어요. 저희 밥을 챙겨주려고 늘 노력했어요.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저희는 떠돌아 다녀야했어요. 처음에는 작은아빠 집으로 갔는데 거기에 있기가 너무나 괴로워 죽고 싶을 정도였어요. 엄마에게 전화해서 우리를 못키운다면 고아원에라도 보내달라고 했어요.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있는 시골로 우리를 보냈어요. 그곳도 힘들었어요. 깡시골이었거든요. 다행히 저희를 불쌍히 여긴 고모할머니가 저를 학교를 보내야한다며 지방소도시로 데리고 나와 주었어요. 동생은 시골에 남았고요.

하지만 고모할머니 댁에서도 오래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생겼어요. 중3이 되었을 때 혼자 서울로 올라왔어요. 어렸을 때 집처럼 지냈던 교회를 찾아갔어요. 몇 달 동안 교회에서 먹고 자고 지낸 다음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게 되면서 근처 고시원에서 지냈어요. 고2가 되던 해에는 동생이 서울로 올라왔어요. 저는 소녀가장이 됐어요.

아빠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온 3000만원 정도의 사망위로금을 작은아빠가 가지고 갔다고 들었어요. 고모할머니가 나서 1200만원을 돌려받게 됐어요. 그런데 그 돈을 다시 엄마가 가지고 갔어요. 500만원을 방 보증금으로 쓰고 월세를 몇 달 내주었지만, 곧 끊겼어요. 기초생활수급비 30만원에서 20만원 월세를 내면 10만원이 남았는데, 그 돈으로 저와 동생이 생활해야 했어요. 다행히 교회와 학교에서 밥을 줬고, 복지관에서 무료로 공부를 가르쳐 줬어요.

엄마와의 추억은 한 가지도 없어요. 엄마는 저희를 두고 집을 나와서 다른 아저씨의 아이들을 키웠어요. 엄마와의 관계는 익숙해져 이제 미워하지도 않았지만, 엄마가 제 동생이랑 세대를 구성했다가 혼자 말없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동생이 서류상 세상에 없는 존재가 돼버렸던 적이 있었어요. 아파서 병원에 실려 갔는데 의료비 보조를 못받을 뻔 했어요. 그 때는 정말 엄마가 미웠어요.

가장 슬펐을 때는 제 동생이 소년분류심사원에 들어갔을 적이었어요. 동생이 시골에 있었을 때 불량한 형들을 따라다녔어요. 그런데 그 형들이 동네 마트를 털면서 제 동생을 문 앞에 세워 망을 보게 했어요. 그 때 제 동생은 중학교에 막 입학한 어린 애였어요. 그 일로 절도죄 전력이 생겼어요.

동생은 서울로 와서 자기도 돈을 벌겠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날 사고가 났어요. 피해자가 제 동생이 운전면허가 없다는 것을 알고 고발했어요, 중2밖에 안된 동생의 머리는 빡빡 깎였고,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어요. 보호관찰 중 사고라 가중처벌이라고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보호해줄 어른이 없어서 더 많이 혼난 거 같아요. 그 아이를 고용한 가게 주인은 제 동생이 중학생이고 면허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싼값이 좋아서 일을 시켰지만 사고가 나니 모른 척 했어요. 제가 법원에 가서 판사님에게 “앞으로 잘 지도하겠다. 용서해 달라”고 빌었어요. 판사님은 교복 입은 여자애가 보호자라고 와서 울고 있으니 불쌍하다고 생각한 것 같았어요. 그 후로 동생은 안정을 찾지 못했어요. 결국 중학교도 졸업을 못했어요. 착한 아이인데 마음이 아파요.

스무 살이 된 해에는 기초생활수급비가 끊겼어요. 통보를 받지 못했어요.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어요. 다행히 저는 밝은 성격이라 꿋꿋이 잘 이겨왔지만, 저처럼 이런 일을 겪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쌤에게 요즘 제 고민을 상담하고 싶었고, 제 경험이 다른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담을 신청했어요.

박상희 소장이 상담을 진행하며 내담자의 사연을 경청하고 있다.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박상희 소장이 상담을 진행하며 내담자의 사연을 경청하고 있다.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상담 내용

유진(가명)아. 너를 처음 봤던 건 초등학생 때였어. 생글생글 귀여운 아이였어. 아빠가 혼자 키우고 있다는 말을 들었었지만 구김살이 없어 보여 별로 걱정하지 않았었어. 너의 10대가 이렇게 힘든 시간이었다는 것은 쌤은 상상도 못했다. 성인이 된 후 간간히 SNS로 인사할 때도 너는 늘 밝았거든.

몇 주 전 너무 힘들다고 연락했을 때 나는 네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야한다는 것을 느꼈어. 20대가 된 너는 사랑 때문에 아파하고 있었어.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가 네 가정환경을 이유로 반대하는 가족들로 인해 결국 떠나갔다고 했지.

쌤은 네가 너무 힘들었던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도, 지금의 속상함을 이야기할 때도 계속 웃으면서 말하는 게 마음이 아팠어. 혹시라도 분위기가 무거워질까봐, 내 기분이 불편해질까봐 걱정하며 배려하는 웃음이었거든.

학교를 다닐 때 네가 워낙 밝으니까 친구들은 상황을 눈치 채지 못했다고 했지. 그런데 한 친구가 말했다고 했지. “유진아. 너는 매일 웃고 있는데 왜 내 눈에는 니가 웃는 게 많이 힘들어 보이니?” 그 말을 듣고 너는 펑펑 울어버렸다고 했지. 들켜서 창피했지만 위로가 됐다고 했지. 그 친구가 느낀 게 무엇이었는지, 네 울음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나도 알 것 같아. 너는 밝은 성격을 가진 아이이지만, 네 웃음은 자주 네 슬픔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

유진아. 쌤이 어른이고 상담사지만 네게 해 줄 조언은 없어. 어른도 지기 어려운 삶의 무게를 그렇게 잘 감당해 온 너한테 무슨 조언을 할 수 있겠니?

쌤이 가슴 아팠던 게 또 있단다. 어렸을 때부터 갖고 싶은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는 너의 말이었어.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들어줄 사람도, 사줄 사람도 없으니 그런 마음이 들 수조차 없었던 거 같다고 하면서 너는 또 웃었지. 어리광이나 투정을 부려본 적이 없으니 네 감정을 이야기하는 게 어렵겠지만, 나와 상담할 때는 오직 네 자신만 생각하면 돼. 슬프면 마음껏 울어도 되고, 화나면 크게 소리 질러도 돼.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아도 된단다.

유진아, 너는 어린 시절 외로웠지만 다행히 사람 복이 많다고 감사하다고 했어. 그런데 쌤이 보기에 그 인복은 좋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네 힘에서 비롯된 거야. 너의 책임감, 배려심, 성실함은 남다르잖아. 그래서 너를 친자매처럼 소중히 여기는 선후배들이 있고, 너를 놓치기 싫어하는 회사가 있고, 너로 인해 힘을 내 살아가는 동생도 있다고 생각해.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너를 보면서 대상관계이론(object-relations theory) 이론가들의 이야기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 대상관계이론에 따르면, 어린 시절 주요 양육자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은 이는 어른이 된 후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어릴 적 만들어진 견고한 자아 구조로 삶을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거든.

쌤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네 아빠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야. 아빠는 너희가 어렸을 때 최선을 다해 너희를 아끼고 지키고 사랑해주었잖아. 그 때 받은 사랑이 네 마음 속 견고한 힘이 되어서 너를 지키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야. 유진아, 너는 아빠가 삶을 걸고 지켜낸 딸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래. 너는 정말 특별한 아이란다.

■후기

뉴스에서 소년소녀가장, 보육종료 청소년들의 기사가 나올 때마다 막막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제도 개선이 이뤄져 왔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아이들이 무관심 속에 내팽개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조금이 늘어난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삶 전체를 보듬어야 한다. 스스로 집을 얻고, 생활필수품을 사고,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일도 어렵지만, 혼자서 외로움과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게 더 힘들 수도 있다. 어른스러운 아이들은 많고, 어른 같은 어른들은 적은 우리 사회. 나는 어떤 어른일까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박상희 소장은

삶의 무게 내려놓고 마음껏 울어 보렴

이화여대에서 목회상담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소장을 맡고 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 위의 사례는 유튜브채널(박상희의 심리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무료심리상담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에서 3월7일부터 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무료심리상담 신청 sharonewha@hanmail.net

 


 

※ 이 글은 경향신문에서 발췌했습니다.


<사진/기사 출처: 경향신문>


<기사원문>▶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203041647005


[Youtube 박상희의 심리 스튜디오]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마음껏 울어 보렴” - [구해줘! 내 맘] 8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