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꿈이 없다는 아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상담 신청
저희 아이는 초등학교 때 전교 부회장이었어요. 친구도 많고, 운동도 잘하고, 교내 교향악단 첼로 연주자이기도 했어요. TV 뉴스 앵커도 되고 싶고, 변호사도 되고 싶은 꿈 많던 소녀였어요.
그런데 얘가 중학교에 가더니 완전 다른 애로 변했어요. 말로만 듣던 ‘중딩병’이 무섭게 오더라고요. 점점 짜증이 늘더니, 요즘에는 제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아요. 이제 곧 고1이 되니 공부 스트레스가 심하고, 마음도 불안하고 힘든 것은 알아요. 그런데 무슨 말을 해도 “아, 몰라”, “아, 짜증나”라고만 하고, “엄마도 싫어”라는 얘기도 몇 번 하더라고요. 아주 제 속이 뭉개지죠.
며칠 전 기가 막히는 일이 있었어요. 제가 아이와 친구들 네 명을 함께 밥 먹이고 학원에 데려다 주는 날이었어요. 엄마들이 번갈아가면서 당번을 하거든요. 저희 딸을 비롯해서 다섯 명 다 중상위권 성적은 되는 애들이에요.
저녁을 먹이면서 넌지시 “너희는 꿈이 뭐니?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물었어요. 가벼운 척 질문을 던졌지만 매일 아이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저로서는 궁금하던 거였어요. 그런데 애들이 거의 동시에 “모르겠어요”, “어렵다”, “전 꿈 없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한 명만 “웹툰 작가요”라고 말했고요. 저희 애는 짜증나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고요. 듣고 나니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애들이 하루 종일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학교 끝나면 학원가서 밤늦게까지 또 공부를 하고, 주말에도 학원에 가요. 자기네들끼리 샘도 많고 경쟁심도 많아요. 그런데 이런 애들이 꿈은 없다니요? 그럼 얘들은 도대체 왜 울며불며 공부를 하고, 경쟁하는 걸까요?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보면 애들이 서로 시기하고 경쟁하지만 그 애들은 적어도 확실한 꿈이 있으니까 그 난리치는 게 이해가 되잖아요. 저희 아이들은 저런 대답을 해놓고 서로 킥킥 대다가 시간이 되니까 늦었다고 학원으로 가더라고요.
이날 이후 생각이 많아졌어요. 저도 저희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애를 영혼 없는 기계처럼 키워서는 안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만 이런 상황을 비인간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느끼는 걸까요?
요즘 아이들 다 이런가요? 이렇게 놓아둬도 되는 건가요? 이제 입시생인데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제가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걸까요?
■상담 내용
어머니의 글을 읽으면서 아이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요. 꿈을 잃은 채 종일 내내 공부만 하는 아이가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동시에, 입시준비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성적이 아닌 이런 고민을 해도 되는지 불안해하는 엄마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어요.
사실 어머니의 고민은 청소년들을 만나는 상담사들이 하는 고민이기도 하답니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요. 정말 안쓰러울 정도죠. 그런데 어머니가 언급하신 것처럼 꿈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애들도 많고, 대답을 해도 막연히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유명해지고 싶다고 얘기를 해요. 근본적인 삶의 동기가 없는 채로 하루하루 힘들어만 하는 수많은 청소년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왜 이렇게 꿈도 없고 주도성도 없을까요? 먼저 너무 지쳐 있다는 걸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를 향해 달려왔어요. 사실 유치원부터인 경우도 많아요. 어른들도 어떤 일을 할 때 몇 년이 넘어가면 소진되고 지치는데 아직 어린 아이들이 10년 이상을 쫓기듯 달려왔으니 의욕과 의지가 남아있는 게 더 신기해요. 어른들도 소진되어있을 때 누군가가 “당신 미래의 꿈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짜증만 나잖아요.
애들이 학교도 정상적으로 가고, 공부도 하니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인 경우가 많아요. 최근 청소년의 우울증 비율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요. 청소년 우울증은 어른들의 우울증과는 달라요. ‘가면우울증’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주증상은 무기력이에요. 의욕이 없어지고, 꿈도 없어지고, 원하는 것도 없어져요. 적절한 치료가 어려운 까닭은 어른과 달리 우울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반항적으로 행동하거나 싸움을 하는 등 비행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무기력감이란 열심히 하고 싶어 노력해도 도저히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느끼는 감정이에요.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공부,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 없는 상위권 친구들, 마음을 공감해주지 않고 몰아만 붙이는 어른들. 꿈을 잃은 아이들은 아마도 여러 번의 좌절이나 절망 끝에 그리 되었을 거예요.
그렇다면 소진된 아이들이 왜 그렇게 공부는 열심히 할까요? 그것은 이미 오랫동안 훈련된 상태이기 때문이에요. 습관화된 것이죠. 그냥 친구들이 하니까 나도 하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다들 달리니까 나도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부모님에 대한 사랑도 또 하나의 요인이에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부모님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요.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게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주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부모님이 원하는 공부를 잘해보려 노력해요. 그러나 이 경우 자기 스스로의 동기가 아니니 결국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지요.
스마트폰도 아이들 상황을 부추겨요. 스마트폰 속의 세상은 화려하고, 예쁜 것들로 가득해요. ‘플렉스’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재력이나 귀중품을 과시하는 행위를 이르는 신조어인데, 아이들은 이 플렉스를 동경해요. 돈을 물 쓰듯 하는 인기스타나 재벌가 아이들을 보면서 자신만의 가치와 신념에 대한 의지가 사라지고 ‘돈이 최고다’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노력해도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울감이나 무기력을 느끼기도 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사회적 해법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사회의 과도한 경쟁, 외모지상주의, 황금만능주의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에요. 부모들 중 누가 소중한 아이를 이렇게 힘들게 키우고 싶겠어요? 그렇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만 낙오될까봐, 불행해질까봐 두렵고 걱정되니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을 모른 척 둘 수는 없어요. 너무 많은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하고, 이런 방식 아래서는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라기도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에요. 부모님이 아이들의 마음을 살펴보고, 돌봐주어야 해요. 그것은 부모의 의무예요. 입시를 앞두고 있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의 문제를 모른척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교육도 중요하지만 정서는 더 중요해요. 정서가 무너진 아이가 어떻게 마라톤 같은 학습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겠어요? 아이들과 정서적 소통을 해야 해요. 그러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을 것 같아요. “누가 안하고 싶어서 안하나요? 나는 하고 싶은데 애들이 협조를 안하는 거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부모님과 왜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때문이에요. 아이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고 싶어 해요.
요즘 부모님들은 경청법, 공감법, 대화기법 등을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대화가 매끄럽게 시작해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시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대부분의 대화가 종료돼요. 그런데도 아이와 대화를 잘했다고 착각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아요. 말투나 대화 내용은 기억하지 않고, 아이들을 사랑했던 마음과 의도만 기억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이런 대화를 몇 번 하고 나면 아이는 부모와 소통을 끊어버려요.
아이들과 대화를 시작할 때 성적이 아닌 다른 주제로 시도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어요. 조금만 고민해 보시면 음식, 스포츠, 연예인 등 아이의 관심사는 많아요. 또 시간이 별로 없다면 그냥 듣기만 하고 끝내셔도 좋아요. 잘 들어주기만 해도 좋은 대화이에요. 부모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고 생각하면 아이들은 편안해지고 행복해져요.
꿈에 대해서 어머님이 따님과 다시 한 번 차분히 이야기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어요. 부모와 함께 꿈을 찾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꿈이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굳건해지는 것이에요.
중요한 것은 부모는 옆에 있어주며 조언을 해주되 선택은 아이 스스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스스로 찾은 꿈을 찾아 노력하는 아이는 의미 있는 결실을 낼 것이라고 믿어요. 만약 당장의 결과가 별로 좋지 않더라도 그 아이는 그 곳에서 교훈을 얻어 더욱 더 성장할 것이고요. 꿈을 품은 아이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보고 싶어지네요.
이화여대에서 상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18년째 소장을 맡고 있다. 2014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다양한 연구에 참여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서 발췌했습니다.
<사진/기사 출처: 경향신문>
<기사원문>
▶ 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212091606005
[Youtube 박상희의 심리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