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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소장] 경향신문_다름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22)]

  • 관리자
  • 202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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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지극히 정상입니다…나에게 맞추려하지 마세요

 

우리나라 세대갈등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가치관의 차이다. 기성세대는 대체로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물질주의적 가치’에 기울어져 있지만, 청년세대는 대체로 의미를 중시하는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선호한다. 삶에서 정답은 없다. 물질과 의미 모두 나름대로 중요하지 않을까. 세대갈등의 해법은 꾸준한 소통밖에 없다.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가장 먼저 서로의 의견에 관용하고, 상대의 다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세대갈등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가치관의 차이다. 기성세대는 대체로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물질주의적 가치’에 기울어져 있지만, 청년세대는 대체로 의미를 중시하는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선호한다. 삶에서 정답은 없다. 물질과 의미 모두 나름대로 중요하지 않을까. 세대갈등의 해법은 꾸준한 소통밖에 없다.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가장 먼저 서로의 의견에 관용하고, 상대의 다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야기>

■아버지의 말

이봐요, 선생님. 내가 오늘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다고요. 내가 30년을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개인적인 일 본다고 하루를 땡땡이 친 일이 없소. 내가 지방이기는 해도 큰 기업 계열사 대표예요. 그런데 얼마나 답답하면 KTX를 타고 서울까지 왔겠습니까? 아들이라고는 저 녀석 하나이고 나이 마흔 넘어서 얻은 아들이라서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몰라요.

내가 밤낮없이 열심히 일한 것은 저 녀석 때문이에요. 그런데 내가 요즘 저 애를 보면 아주 속에서 열불이 나고 잠이 안와요. 애 엄마가 사춘기라서 예민하니까 그냥 놔두라고 해서 내가 거의 2년을 참았어요.

저 녀석이 누구를 닮아서 저렇게 소심하고, 말도 없고, 부끄러워하고, 겁도 많은지 모르겠소. 꿈도, 야망도 없어요. 친구도, 사회생활도 없어요. 그렇다고 반항을 하거나 대들지도 않아요. 그냥 꿈틀거리는 지렁이 같아요. 움직이기는 하는데 살아 있는 건지 죽은 건지도 잘 모르겠고, 흙 같기도, 나무 열매 같기도 한 희끄무레한 존재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아직은 어리지’ 싶어서 그냥 예쁘다 해주었고, 6학년 때인가 ‘사내자식이 저리 살다가는 바보된다’는 생각에 내가 먼 동네에 데리고 가서 버리고 온 적도 있어요. 진짜 버린 건 아니고 혼자서 집에 씩씩하게 찾아와 보라고 차비도 안주고 놓고 온 겁니다.
딱 한 번 때렸습니다. ‘너는 열심히 하는 게 도대체 뭐야’라고 소리쳤더니 ‘아빠처럼만 안되면 제 인생은 성공이니까 나한테 제발 말 좀 걸지 마세요’ 라고 대꾸하길래 귀싸대기를 때렸어요. 나중에 후회하기는 했지만 그랬다오. 이 세상이 얼마나 정글입니까? 호랑이가 돼도 살기 어려운데 저런 고양이, 아니 고양이새끼처럼 살다가는 무시당하기만 하고 결국 사회에서 자리는 없다고요. 지렁이는 사람들 구둣발에 순간에 밟혀 죽어요. 흙가루가 돼요. 제 말이 틀립니까?

아무튼 내가 오늘 정말로 힘들 게 온 거니까 저 애를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는지 꼭 알아야겠어요. 나도, 아내도 저런 맥 빠진 성격은 아니에요. 내가 그래도 어디서나 인정받는 사람이고, 내 아내도 싹싹하니 붙임성 좋은 사람이에요. 도대체 내 자식이 저렇게 나약하고, 한심한 이유를 알아봐 주세요. 솔직히 말해서 유전자 검사라도 해봐야 하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답답해 미치겠습니다.

■아들의 말

아빠가 저보고 정신병자래요. 맘대로 생각하세요. 신경 안써요. 어차피 답답한 부모님에게 기대하는 거 없어요. 아빠는 전형적인 꼰대죠. 그냥 제가 전교생 앞에 나서서 회장하고, 상장 타고, 대장 노릇을 해야 만족하는 아빠예요. 언제적 ‘싸나이 철학’이에요? 지겨워요 진짜.
저, 꿈 있거든요. 공부도 꽤 잘하거든요. 제 꿈은 인서울 대학에 가는 거예요. 스카이(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는 힘들어도 서성한(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꼭 서울로 와야 해요. 그래야 집에서 나올 수 있잖아요. 오늘도 서울이라고 해서 순순히 따라 나온 거에요. 여기 연세대 근처죠? 저도 여기 오고 싶어요.

졸업하고는 컴퓨터 엔지니어가 돼서 외국 기업에 취업하는 게 제 꿈이에요. 되도록 한국 땅에서 멀리멀리 떠나고 싶어요. 전 친구 많이 필요 없어요. 그냥 저랑 마음 맞는 한 두 명이면 되거든요. 근데 아버지는 진짜 친구는 하나도 없으면서 맨날 ‘사내는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아야 하고, 감명을 줘야하고 어쩌구 저쩌구’ 타령이에요.

지금은 아빠가 회사 사장이니까 다들 아빠한테 굽신거리지만 환갑만 지나도 찾아오는 후배나 친구가 하나도 없을 걸요? 나이 들어서 아빠가 외롭나 제가 외롭나 내기하자고 말할까 하다가 또 열받을까봐 참았어요. 학교 선생님들도 저 좋아하고, 친구들도 좋아하는데, 아빠만 저를 문제아라고 해요. 어쩌라구요! 전 포기했어요.

<상담>

지용(가명) 아버님. 멀리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루 일을 빼시고 멀리 오시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죠. 지용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지용이의 심리검사 결과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지용이는 지극히 정상인 아이입니다. 물론 지용이가 아직은 사춘기에 있는 청소년이기 때문에 말투가 다소 예쁘지 않고,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둔감성과 소심함의 문제도 보이고요. 하지만 MMPI(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 검사 결과 심각한 수준의 정서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사회성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웩슬러 지능검사 결과는 125점이니 머리도 상당히 좋은 아이입니다.

아버님께서 보시기에는 문제가 많은데 저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하니 이해가 안가시죠? 오늘 원인을 꼭 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다섯 개의 심리검사를 진행했습니다. 모두 신뢰도와 타당도가 높은 검사들입니다. 이 말은 이 해석이 단순한 제 생각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지용이는 정서와 지능과 사회성에서 모든 것이 정상 수치에 있는 아이입니다.

아버지의 질문에 통찰을 줄 수 있는 심리검사는 보조 검사로 시행한 MBTI 검사 결과입니다. 이 검사는 심각한 정신문제를 알아내려고 시행하는 검사가 아니라 타고난 성격의 선호도를 알아보는 ‘성격검사’입니다. MBTI 검사는 인기가 너무 많아 맹신하는 경향이 생겨 우려하는 이들도 많지만 전문가가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꽤 의미있는 검사입니다.

가장 유용한 측면은 사람들 간에 ‘차이’와 ‘다름’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결과를 보면 아버님은 외향성(E) 척도의 점수와 판단형(J) 척도의 점수가 매우 높게 나타납니다. 반면 지용이는 내향성(I) 척도의 점수와 인식형(P) 척도의 점수가 매우 높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반대 성향이 분명하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극외향인 아버지는 극내향인 아들이 너무 힘이 없고 소심하고 나약하다고 느끼는 반면, 극내향인 아들은 극외향인 아버지의 말투와 행동이 부담스럽고 힘들고 불편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계획을 세워 일을 하고, 지용이는 자유로움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갑니다. 힘의 차이가 있으니 아들은 아버지와 대면해 해결하기보다는 피하고 싶어 대화 자체를 안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아버지는 더 속이 터지는 악순환의 상태인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나눠본 지용이는 꿈이 있는 아이입니다. 요즘은 꿈이 없는 아이들이 많은데, 지용이의 경우는 자신이 원하는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놀라셨지요? 두 사람의 문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변화가 아니고 서로 간의 소통입니다.

오늘 아버지와 대화하면서 제가 가장 많이 들은 단어 중 하나가 ‘내가’ 입니다. 아버지께서 맡은 책임이 커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수적이고 경직된 시각을 갖게 되신 것은 아닐까요? 저를 포함해 기성세대는 자주 나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내가 매사에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아이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아버님께서 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얼마나 노력하시고, 최선을 다해 오셨는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노력의 대가로 지용이의 안락한 생활이 가능한 것이겠지요. 또한 자식에게는 그런 험난한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으신 애틋한 사랑의 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용이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용이 아버님. 그 사랑의 마음이 지나치고,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게 되면 불안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이 불안해지면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지고 원활한 대화는 힘들어집니다. 소통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그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지용이는 아버님과 다를 뿐 문제아가 아닙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도 생각납니다. 지용이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아주시면 그 아이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해주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소통하고, 사랑만 하기에도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후기>

세대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었던 현상이다. 그런데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사회변동 속도가 빨라지면서 오늘날 세대 간 거리와 이해가 더욱 멀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세대갈등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가치관의 차이다. 기성세대는 대체로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물질주의적 가치’에 기울어져 있는 반면, 청년세대는 대체로 의미를 중시하는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선호한다. 삶에서 정답은 없다. 물질과 의미 둘 다 중요하다는 사실은 당연하다. 세대갈등의 해법은 꾸준한 소통밖에 없다.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가장 먼저 서로 의견에 귀 기울이고, 상대의 다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박상희 소장은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22) 다름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이화여대에서 상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18년째 소장을 맡고 있다. 2014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다양한 연구에 참여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박상희(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이번 상담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아버지와 진행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