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상담위원들의 칼럼입니다.

[박상희 소장] 경향신문_속마음 털어놓을 친밀한 사람 만나 회복 도와야[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14)]

  • 관리자
  • 202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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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코로나19로 부모님을 모두 잃었어요
 │영원한 이별 ‘어쩔 수 없었다’ 생각은 하지만… 무척 힘들어요



■대화

“제게 이런 일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어요. 코로나가 시작됐을 때 태국여행 중이었어요. 사람들이 코로나19라는 병이 생겼으니 마스크를 사서 꼭 쓰고 귀국하라고 했을 때도 저는 전혀 체감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 후 2년 사이 코로나로 엄마와 아빠를 차례로 잃었어요.”

―코로나19로 부모님, 두 분을 모두 잃다니 충격이 대단히 크셨겠어요.

“엄마는 전혀 아프신 곳이 없으셨어요. 씩씩하고 밝은 인기 있는 젊은 할머니셨어요. 작년 초에 엄마, 아빠, 동생, 셋 모두가 델타 바이러스에 걸렸어요. 각자 다른 병원으로 격리됐다가 돌아왔는데, 엄마는 증상이 심해져서 다시 입원하셨어요. 의사가 폐섬유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데다가 폐렴까지 더해져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말이었죠. 엄마가 돌아가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마음에 준비가 조금도 안됐어요. 병원으로 들어간 엄마가 전화로 ‘나 곧 죽을 것 같은데 제발 병원에서 빼내 줘라. 나 죽어도 집에 가서 죽고 싶다’고 하셨는데 제가 큰소리를 쳤어요. 엄마를 위로해 드린 게 아니라 야단을 쳤어요. ‘지금 온가족이 우울하고 힘든데 가족 다 죽이려고 하시느냐. 왜 그런 애 같은 말씀을 하시냐고, 엄마가 거기서 치료받고 병 나아서 나오셔야지’ 라고요. 그게 엄마와 마지막 대화였어요. 곧 의식을 잃으셨어요.”

―건강하셨던 어머니께서 짧은 기간에 중환자가 되셔서 의식을 잃으셨으니 온가족이 정말 놀라셨겠어요.

“엄마는 그렇게 돌아가셨어요. 엄마를 외롭게 보내드린 것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나 커요. 평생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됐어요.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으니 병원에 들어가신 후 한 번도 볼 수 없었고, 결국 임종도 못봤어요. 저는 도저히 엄마를 보내드릴 수가 없어서 ‘제발 우리 엄마 좀 살려달라’고 애원해서 2개월간 연명치료를 했어요. 나중에 가서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봤는데 테이핑을 너무 많이 해서 생살이 다 찢어져 계셨어요. 몸도 다 부으셨고요. 이 죄스러움을, 이 그리움을 저는 어찌할 수가 없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 핸드폰에 남아있는 엄마 목소리를 한 번도 못들었어요.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 간절하지만 들을 용기가 나지 않아요.”

―엄마와 영원한 이별을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장 큰 고통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윤서님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를 잃으셨으니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닐 거예요.”

“아빠도 한 달 반 전에 돌아가셨어요. 올해 3월 말이었어요. 아빠는 지병이 있으셔서 요양병원에 계셨어요. 오전에 확진 소식을 들었는데 오후에 병원에서 돌아가셨어요. 약해진 몸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겨나가시지 못하셨겠죠. 아빠 임종 역시 못봤어요. 이 시기가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온 때였잖아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어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뛰어갔지만 안치실도, 장례식장도, 화장장도 없었어요. 냉동실에서 대기해야 했어요. 지인들에게도 알리지 않았어요. 들어도 마음만 괴로운 소식이고, 올 수도 없었으니까요. 아직 아빠 49재가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저는 여전히 아빠와 이별하는 연습 중이에요. 자기 전에 무척 마음이 힘들고, 두 분이 꿈에도 자주 나오셔요.”

―어떤 말로도 위로를 드릴 수가 없어요. 한 분도 아니고, 두 분을…. 아직 이별을 진행 중이라는 윤서님 말씀도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어버이날이었잖아요. 마음이 많이 힘들더라고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는지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물론 전 세계가 함께 겪은 일이고 저처럼 마음이 아픈 이들이 많은 것을 알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괜찮지는 않아요. 엄마는 아픈 곳이 없던 분이라 그 안타까움이 더해요. 사람들은 엔데믹이라고 일상을 회복한다고 하는데 제게는 엔데믹이 오지 않아요. 마음으로부터 코로나가 끝났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그리고 늘 무슨 일이 또 일어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고요. 저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윤서님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해요. 불안이란 심리는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큰일을 겪으셨으니 불안하고 무서운 것은 당연하지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시는 것도 진심으로 이해가 돼요. 부모님이 안계신 지금이 너무 힘들기 때문일 거예요.

“머리로는 ‘어쩔 수 없었다’, ‘엄마, 아빠의 임종을 못본 것이 내 잘못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그게 안돼요. 그냥 다 제 잘못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엄마, 아빠도 마지막 순간에 우리 형제들이 얼마나 보고 싶으셨겠어요. 저희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얼마나 많으셨겠어요. 얼마나 자식들이 간절하셨겠어요.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나니 ‘다음 차례는 나구나’ 라는 생각도 들어요. 인생이 참 허망해요. 저처럼 마음 아프신 분들이 많을 텐데 다들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시간은 결국 지나가겠죠.”

코로나19 가 팬데믹에서 엔데믹 수준으로 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의 코로나19 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검사자를 기다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제언

공포스럽던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나 일상의 회복이 시작되고 있다.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전환된다면 우리 마음은 행복할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개인의 정신건강 측면은 지금부터가 더 빨간불이다.

‘코로나 블루(우울)’보다 더 강력한 ‘포스트 코로나 블루’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포스트 코로나 블루란 재난이 끝날 무렵 덮쳐오는 우울감이다. 팬데믹이 가라앉아 일상이 회복되고 있지만, 우울감이나 스트레스는 팬데믹 때보다 더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에 국내 우울 위험군은 3.8%였던 반면, 최근에는 18.9%로 크게 치솟았다. 정신건강이 가장 위험한 때는 재난 후 3년 시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스트 코로나 블루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달라진 일상에 적응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다. 거리 두기 해제로 회식 및 모임이 활발해지고 개인 시간이 줄어들면서 이 상황을 버거워하는 개인들이 늘고 있다. 특히 사회 경험이 적은 2030세대 직장인들은 이런 스트레스에 더 취약할 수 있다. 이 적응 스트레스가 심해질 경우 우울증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은 합심해 재난을 이겨나가는 데 집중한다. 그런데 재난이 끝나 각자의 일상이 돌아가는데 사람마다 그 경험이 다르다. 어떤 이들은 자연스럽게 되돌아가는데, 그렇지 못한 이들이 존재한다. 그 재난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고, 경제적으로 무너졌고, 사회적 기회를 상실한 이들이다. 이런 ‘나만 고통스럽다’ 라는 생각은 무엇보다 무기력과 우울감을 낳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600만명이 넘는 이들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국내 사망자 수는 2만4000여명에 달한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사망자의 직계가족만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고 가정해도 그 규모는 6만8000여명에 달한다.

급작스러운 재난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남겨진 이들의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의 경우 충분한 애도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남은 이들에게 더욱 큰 상처를 남겼다. 개인적으로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죄책감에 시달리기 쉽다.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다.

바로 이점에서 코로나로 인해 남겨진 아픔은 개인의 것이 아닌 사회의 몫이 돼야 한다. 특히 취약계층의 경우 우울증의 위험성이 1.8% 더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사랑하는 이들을 보낸 유가족의 아픔을 애도하고 돌볼 수 있는 국가트라우마센터와 같은 국가적 치유 시스템은 계속돼야 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그 기능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처음 살아본다. 이 시기를 잘 극복할 지혜는 어떤 것일까.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 고립되고 외로웠던 이들에게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밀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회복일 수 있다. 나아가 정부를 포함한 공공기관들은 이러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상처가 흉터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박상희 소장은



이화여대에서 상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18년째 소장을 맡고 있다. 2014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다양한 연구에 참여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