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상담위원들의 칼럼입니다.

[박상희 소장] 경향신문_20년간 가족에게 헌신한 당신, 이제 자신을 돌볼 시간이에요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12)]

  • 관리자
  •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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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명문대 나오고 돈도 버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아요

신의 감정을 직면한다는 것이 때로는 괴로운 일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마음이 느끼는 것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편안해지고, 올바른 선택도 할 수 있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신의 감정을 직면한다는 것이 때로는 괴로운 일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마음이 느끼는 것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편안해지고, 올바른 선택도 할 수 있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상담 신청

“서울대를 나온 여자가 왜 중고차 딜러를 하냐고요? 돈을 빨리, 많이 벌고 싶었거든요. 가난이 지긋지긋했고 부모님 두 분 모두 저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빠는 수재셨어요. 대기업에 다니셨지만 억울하게 해고된 후 평생 알콜중독자로 사셨어요. 재기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그럴수록 더 망가지셨어요. 가장이 된 엄마는 ‘하우스 운영’(도박을 하도록 장소를 제공하는 일)을 했는데, 도박꾼들과 같이 경찰서에 잡혀 들어가는 엄마를 몇 번이나 지켜봐야 했어요. 그 시절 마루에서 낯선 사람들이 도박을 하면 저는 방에서 혼자 공부했어요. 한 번은 잠깐 잠들었다가 성추행을 당한 적도 있어요. 엄마는 조용히 넘어가셨어요.

이런 환경에서 서울대를 들어갔으니 대단하긴 한 거죠. 정말 미친 듯 공부했어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공부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어요. 문제는 서울대에 들어가기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동안 한 번도 행복해본 적이 없었다는 거지만요.

행복하지 않은 것은 돈 때문인 거 같아요. 아니 내가 돈을 벌어 오기만을 바라는 가족들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지긋지긋해요. 제 나이가 마흔인데 결혼도 못하고 부모님 뒷바라지만 했어요.

알콜중독자인 아빠는 어쩔 수 없고 동생들은 철이 없다고 치더라도 가장 화가 나는 사람은 엄마예요. 제 고통은 조금도 관심이 없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세요. 일흔이 넘었지만 SNS를 열심히 하시고,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밖에서 종종 만나서 노시곤 해요. 아빠 병원에 갈 때도 한껏 꾸미고 가세요. 제 화장품은 1+1만 사지만 엄마 화장품은 늘 외제화장품이에요. 나는 그녀의 종 같아요.

심리상담이니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거죠? 고백하면 그동안 저는 수없이 부모를 죽였어요. 꿈 속에서요. 마음 속에서도 그랬어요. 그래서 뉴스에서 부모를 죽였다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도 마음 속으로 수백 번 부모를 죽이다 어느 날 정신을 놓고 행동으로 옮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사람들은 제가 밝고 자신감 넘치는 여자인 줄 알지만 저는 밤마다 ‘제발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잠들어요. 저도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런데 저는 그저 슬픈 여자랍니다.”

■상담 내용

“미영씨(가명)와 이야기하면서 당신이 오랫동안 지고 있는 짐이 얼마나 무거웠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어요. 몰락한 집안을 일으키고, 엄마가 도박하우스를 운영하는 그런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이 얼마나 컸으면 서울대를 갈 정도로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을까요.

하지만 지금 미영씨에게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해요. 어린 소녀의 분투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중단되지 않고 진행중이에요. 미영씨는 돈이 빨리, 많이 벌고 싶어서 딜러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지만 제가 보기에 돈에 대한 열망보다 더 깊은 문제는 가족에 대한 극한의 책임감, 중압감, 불안감이에요.

본인이 돈을 벌지 못하면 가족의 불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고, 그런 생각은 극심한 마음의 고통으로 이어지죠. 그래서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의 장래를 위한 합리적 선택을 하지 못하고, 성급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어요.

미영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 안될까봐 두려워 100% 취직이 보장되는 작은 회사 한 곳만 면접을 보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고 했죠. 월급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자 회사를 나와서 다단계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그 일이 생각처럼 안되자 자동차 딜러 일을 시작했어요. 문제는 이런 선택들이 20년간 가족의 생존과 생활을 지켜냈는지 모르겠지만 미영씨 마음 속에 깊은 우울과 분노를 남겼다는 사실이에요.

미영씨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나요? 지금은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해요. 상담 시간마다 쉬지 않고 강박적으로 말하는 미영씨를 보면서 저는 미영씨가 자신의 감정과 직면하는 걸 회피한다고 여겼어요. 물론 머리가 비상하고 언변도 뛰어나기에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잘 말하고, 더 활기차게 행동하는 것도 맞아요. 하지만 편안해야 하는 상담 시간에 쉼 없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표현하고 주장하는 것은 더 중요한 걸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자신의 감정을 마주보고 인정하지 못한 채 회피하고 외면하는 경우는 많아요.

자신의 감정을 직면한다는 것이 때로는 괴로운 일이에요. 그렇지만 자신의 마음이 느끼는 것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해요.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편안해지고, 올바른 선택도 할 수 있어요.

다행히 제 질문에 미영씨가 솔직하게 답변한 후부터 우리 상담은 진전이 있었어요. “자기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라는 제 질문에 미영씨는 처음으로 침묵했고, 몇 분이 지난 후에야 조용히 답했어요. “나는 슬픈 여자예요” 라고요. ‘슬프다’는 감정 용어를 처음으로 말했다는 것이 중요해요. 슬프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답답했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비로소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들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에요.

부모님에 대한 ‘양가감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미영씨는 한편으론 자신의 20년을 쏟아 부었을 정도로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세상 그 누구보다 부모님을 미워하고 있어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너무 초과해서 헌신한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미영씨가 이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마음은 충분히 이해돼요. 하지만 혼자서 허우적댄다고 모든 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 또한 받아들여야 해요. 한계를 받아들이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정도를 찾아내야 양가감정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게 더 오래 가족을 도울 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미영씨가 자신 자신을 사랑하고 지키지 않으면서 가족을 사랑하고 지킨다는 게 사실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내 마음 속 사랑의 우물이 바닥났는데 어떻게 타인에게 그 사랑을 나누어 주겠어요?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지킬 수 있는 거예요. 지금은 무엇보다 미영씨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키고 돌볼 시간이에요.”

좋은 가족은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을 일방적으로 희생하도록 하지 않는다. 또한 스스로 자신을 아껴주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을 아낀다는 것은 지속불가능하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좋은 가족은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을 일방적으로 희생하도록 하지 않는다. 또한 스스로 자신을 아껴주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을 아낀다는 것은 지속불가능하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상담 후기

인류가 역사를 이뤄온 이후 행복에 대해 수많은 질문과 대답이 있었지만 여전히 정해진 답은 없다. 행복과 관련이 있는 요소는 넓게 보아 건강, 돈, 명예, 자아실현, 가족과의 관계, 사회적 네트워크, 학벌, 공간 등이다. 어느 한 가지 요소가 행복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미영씨처럼 학벌이 좋지만, 돈이 많지만, 건강하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않은 이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행복에 관한 연구 가운데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미국 하버드대 성인개발연구소의 장기 연구 프로젝트이다. 로버트 월딩어 교수가 이끌었던 연구팀은 75년간 724명의 삶을 추적했다. 이들은 돈, 명예, 권력을 가진 이들이 아닌 가족, 친구, 공동체와의 관계가 친밀한 이들이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이 연구에 크게 동의하는 것은 그동안 많은 내담자를 만나며 그들의 불행의 근원도 사람이었고 행복의 이유도 사람이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받을 때 사람들은 가장 행복해 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 개인에게 중요한 관계라고 해서 다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가족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았던 이들 역시 수없이 만나 왔다. 어느 사회이든 사랑을 가장한 착취, 조종, 폭력이 적지 않다. 좋은 가족은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을 일방적으로 희생하도록 하지 않는다. 자신을 망가뜨리게 하고, 학대하게 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것이다.

내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그리고 일차적인 대상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아껴주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을 아낀다는 것은 지속불가능하다. 자가 속임일 가능성이 크다. 자기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 행복이라는 종착역으로 가기 위한 첫 걸음임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박상희 소장은

20년간 가족에게 헌신한 당신, 이제 자신을 돌볼 시간이에요

이화여대에서 목회상담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소장을 맡고 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서 발췌했습니다.


<사진/기사 출처: 경향신문>


<기사원문>▶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204291637035


[Youtube 박상희의 심리 스튜디오] 행복은 누가 느끼나? “명문대 나오고 돈도 버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아요” - [구해줘! 내 맘] 12회

▶https://youtu.be/bBTrEYTOcz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