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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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미 상담위원] "대답할지니라" 《새가정》 2015년11월호

  • 관리자
  • 201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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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가정생활협회 월간지 《새가정》 2015년 11월호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박현미 상담위원

 


 

[평신도가 띄우는 묵상편지/욥기 11]


“대답할지니라”




상담실에서 만나는 내담자들은 자신의 고통스런 상황과 심정을 토로하고 나면 대부분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선생님,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왜 저한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죠?” 그리고는 답을 알려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이때 자칫하면 고통스러워하는 내담자를 돕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든 답을 주려고 머릿속이 분주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원인 진단과 방법, 대안들을 말해 주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죠. 답을 찾아주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지금 여기서 내담자의 정서와 감정과 함께 있어야 하는 나를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내담자의 문제는 상담사의 과제로 넘어와 버리죠.  


세 친구를 통해서도 그런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한걸음에 달려와 침묵 속에서 위로하던 친구들은 욥의 탄식과 절규를 듣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죠. 자신들의 신학적 지식과 신앙적 지혜를 총동원해 욥이 고난에 빠진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내놓았어요. 그러나 무죄함을 주장하는 욥에게 자신들의 판단과 권면을 인정받지 못한 세 친구의 공박은 더 신랄해집니다. ‘지금 여기’서 욥의 슬픔과 ‘함께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욥의 생각을 돌이키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과제가 돼버렸어요.  


상담 현장에서도 무의식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답을 찾는 내담자의 간절함에 상담사가 성급히 진단하고 답을 주게 되면 그 상담은 더 이상 깊이 있게 진행되지 못합니다. 문제 속에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내담자인데 그 문제의 답을 가진 사람은 상담사가 되니 말이죠. 욥으로 돌아가, 세 친구들이 욥에게 주었던 원인과 대책이 왜 그토록 욥의 거센 저항감을 불러일으켰는지 이해가 되는지요?  


내담자들 역시 입으로는 고통을 해소할, 문제를 해결할 “답을 알려주세요”라고 말하지만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건 상담사의 진단과 해결책이 아닙니다. 답을 알았다고 해도, 예를 들어 대인관계에서 수동적이고 피학적인 사람이 원인과 방법을 알았다고 그 순간부터 능동적이고 자기주장적인 사람이 되는 건 아니기에 상담사의 답은 내담자의 답이 될 수 없어요. 상담사는 내담자의 문제에 답을 주는 사람도, 답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아니죠. ‘지금 여기’에서 내담자의 정서와 감정과 ‘함께’하며 그가 힘을 얻어 스스로 걸을 때까지 곁에서 같이 견디고 버텨주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싶다면 꼭 기억해 두세요.  


그러니 열과 성을 다한 친구들의 분석과 권면이 고통에 찬 욥에게는 “울리는 꽹과리”(고전13:1)였고 논박을 부르는 원인이 되고 만 겁니다. 친구들의 옳은 말, 바른 말이 욥에게는 답이 아니었습니다.    

논박에 지친 욥은 어느 순간부터 이제까지와는 다른 음조가 됩니다. 환난 전 “그때에는” 하나님과 나, 사람과 나의 관계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회상하고(욥29장), “이제는” 환난 속에 홀로 된 자신의 현재를 상기합니다(욥30장). 하나님께서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나의 온전함을”(욥31:6) 알아달라고, 그런 자기에게 왜 이런 환난이 와야 하는지 “전능자가 내게 대답”(욥31:35)해 달라고 하나님을 부릅니다. 


드디어 그동안 못 본 척, 못 들은 척 기척이 없던 하나님께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폭풍우를 몰고 욥 앞에 나타나셨어요.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네요. 하나님의 답을 고대하던 욥에게 대답 대신 질문이 돌아옵니다.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은 자기 밖의 것을 보거나 생각하기 어렵게 되요. 우리의 뇌는 한 번에 한 가지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소유하지 못하기에 지금 여기에서 골똘히 나를 붙들고 있는 생각을 놓아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상담사는 내담자에게 답을 주는 대신 예를 들어, “가장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묻습니다. 인식을 확장시켜 다른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상담에서 공감, 경청과 함께 질문을 중요시하는 이유입니다. 


욥 앞에 나타나신 하나님 또한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욥38:3) 말씀하시며, 욥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아주 강력하네요. 단박에 문제로부터 욥을 떼어내 하나님의 우주로 끌고 가십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광명이 어느 길로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땅에 흩어지느냐...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욥38,39장) 묻습니다. 순식간에 관점이 이동된 질문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 욥은 대답할 바를 찾지 못하죠.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대답할지니라”(욥40:7) 다시 질문하십니다. 베헤못이나 리워야단을 예로 들며 인간이 악하다 하는 것들조차 당신의 공의와 섭리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욥은 모든 대답을 녹여 회개로 답해 드립니다.      


혹시 지금 고난에 처해,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 고통스럽다면, 답을 얻고자 원한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라고 말씀드립니다. “무엇을 원하는가?” “그것을 왜 원하는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답을 찾으며 확장된 인식 안에서 새 길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오늘도 곳곳에서 펼쳐지는 사람들 사이의 고통과 환난들이 “대답해 볼지니라” 물으시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서 답을 찾고 회복되는 욥들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