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상담위원들의 칼럼입니다.

[박상희 소장] 이은주를 생각하며

  • 관리자
  • 2007-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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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팬으로서 영화배우 고 이은주씨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아직도 상실감이 엄습한다. ‘얼마나 견딜 수 없었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싶어 그녀의 마음을 공감해보고, 추측해보려다가 도리어 내 마음이 너무 아파져 그만둔다.

그녀의 죽음의 원인을 놓고 우울증이 가장 설득력 있게 언급되었다. 여러 가지로 보도된 자료들을 볼 때 나 역시 이은주씨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이 우울증이란 흔히 심리적인 감기라고 불리울 정도로 흔한 병이지만 우울증의 환자의 15%가량이 자살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위험한 병이기도 하다. 이 병은 힘들고 괴롭지만 제때에 적당한 치료를 받으면 무척 예후가 좋은 병이다. 이 사실을 알기에 나는 그녀의 죽음의 소식에 이어,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듣고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뱉었었다. 

또 한 가지 생각을 해본다. 내게 인식된 그녀는 인기인이기를 진정한 배우가 되기를 꿈꾸었던 배우였다. 얼핏 보면 평범해보이기도 하는 인상의 그녀였지만 연기를 할 때면 ‘와..., 이은주 맞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영화마다 예상치도 못했던 빛과 색을 뿜어댔었다. 그녀는 그녀가 맡은 캐릭터마다 철저하게 그 캐릭터에 몰입해서 연기하였다. 나는 그녀가 얼굴만 예쁜 스타가 아니라 연기를 잘하는 배우여서 좋았다.

그런데 내가 이은주를 가장 좋아했던 이 점이 결국 그녀를 더 죽게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생각이 든다. 최고의 연기력과 열정을 지닌 그녀가 자신이 맡았던 극중 역할과 과도히 동일시되어 자신의 실생활로 산뜻하게 돌아오는 것에 대한 어려움 말이다. 
차분하고 가련형인 그녀의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그녀가 맡은 역할은 공교롭게도 거의 모두가 애절한 삶을 살다가 죽어가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완벽히 극중 인물이 되었다. 나는 배우 이은주의 연기력이라면 극중 인물과 거의 완벽하게 동일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닌 다른 인물과 철저히 동일시 된 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원래의 자신의 생활로 돌아온다는 것은 쉬운 일일까? 정말 연기력있는 배우들이 한결같이 고백하는 내용이 영화나 드라마가 진행중일 때는 그 인물에 너무나 빠져들어 녹화가 끝난 후에도 그 기분을 떨쳐버리기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개성과 자아가 강한 형의 사람이라면 극중 인물에 몰입했다가도 현실의 자신으로 돌아오기가 쉽겠지만 내가 느낀 평소의 그녀의 이미지는 연예인이라는 직업과 잘 매칭이 안될 정도로 순수하고, 조용한 흰백색의 여인이었다. 흰백색이란 다른 색을 빨아들이기 쉽지만, 너무나 강력하게 침범당하기도 하는 색이다.

그러나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이 우울증이던, 동일시이던, 아니면 두 개 요인의 복잡한 상관성이건 간에 내가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그녀가 그토록 깊은 괴로움의 늪에 빠져 있을 때, 그녀에게 삶의 끈을 놓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어떤 대상도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관계를 추구하면서 산다. 이 관계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나는 엄마에게 심한 매를 맞는 아이들이 더욱 엄마에게 매달리더라는 것을 보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본능이 아닌 관계이다”라고 말했던 심리학자 페어베언의 통찰에 동감한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란 평생에 걸쳐 관계 맺기 위해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도 절대로 삶을 지탱해야하는 관계가 있었다면 그녀의 선택은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그녀의 유서에서도 나타나듯이 그녀는 가족을 끔찍이 아꼈던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족은 그녀의 삶을 끝까지 지켜주는 핵심적 관계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동료도, 친구도, 연인도 그 누구도 빨려 들어가는 그녀를 잡아내지 못했다.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그녀가 종교생활을 했었다고 보고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깊은 신앙심을 지니지는 못했던 것 같다. 종교적 치료방법에 관심이 많은 나는 신과의 관계가 깊은 신앙과 신뢰로 이루어진 이들이 자신의 삶에 새로이 갖게 되는 애정을 알고 있다. 

그녀의 죽음과는 또 다른 문제로 나는 이번 기회에 연예인들이 얼마나 심리적으로 심한 위험성에 노출되어있으며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의논할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지적하고 싶다. 연예인들은 그 화려함 만큼 더 큰 공허감과 긴장감, 불안감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나는 좀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샤론정신건강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예전 연예계 생활을 경험한 상담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이은주씨의 자살소식을 들으면서 안타까움과 동시에 뭔지 모를 죄책감을 느껴졌다. 어떤 위험성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보고하지 않은 것 죄책감이었을까....
나는 어릴 적 연예계의 생리를 경험했다. 그리고 연예계에 종사하는 친구들도 많다. 새삼 고 이은주씨의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이 나는 그동안 우울증에 대해서 연구할 때마다 내 친구였던 연예인들을 떠올렸었다. 가장 눈부시지만 혼자 감당해야할 것이 너무 많은 직업을 가진 친구들. 심리적 부담감과 우울감은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스타 지망생, 이미 톱스타, 잊혀지는 스타 모두에게 골고루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일단 스타급 연예인이 되는 길도 너무나 멀고 험하다. 단지 실력만으로 연예인의 정상의 고지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운이 좋아서, 인맥이 좋아서 등... 예측할 수 없는 가도를 달려야한다. 아직 불안정한 환경에서 연예인 초년생들은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너무나 많은 갈등을 겪게 되고, 너무나 화려한 꿈과 비교되는 현실에서의 자신의 평범한 모습에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많은 유혹에도 노출되어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정도를 지키며 원칙대로 살아가려는 스타지망생은 거의 대부분이 심한 좌절감을 느낀다, 또한 순간의 유혹에 넘어간 이들도 결국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 극도의 스트레스를 감당해야한다. 
특별히 재능이 많거나 운이 좋아, 톱스타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화려함만큼 심리적인 괴로움은 첩첩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대중은 냉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항상 긴장해야하고, 불안해한다. 또한 톱스타들은 어디서나 완벽한 아름다움을 기대 받는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놀라울 정도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스타라면 조금만 주름이 생겨도 사람들의 질타를 받는다. 모든 이들에게 항상 최고의 연기와 아름다움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항상 1등이여야만 하는 고3 수험생의 부담감같지 않을까.
사생활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누구나 명예나 인기에 대한 욕구가 있듯이 자신만의 자유에 대한 욕구도 있다. 그러나 톱스타에게는 자연인으로서의 나’가 주어지지 않는다. 설사 주어진다고 해도 극히 제한적인 시간과 공간에서이다. 이들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아무 곳에도 갈 수가 없고, 마음껏 연예도 어렵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마음껏 놀아주고, 사랑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지탱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라는 무게를 내려놓을 곳이 없는 경우 인간은 누구나 자살이나 마약 같은 극단적인 것들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또한 나는 스타가 된 후 실제적인 가장이 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온 식구의 경제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엄청난 양의 부담감이 된다. 가족들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게다가 스타의 가족들은 소년소녀가장의 가족과는 달리 그 씀씀이가 스타 못지않은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정상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단계이다. 톱의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혹은 자의로 그만두는 경우라도 이 때는 그야말로 심리적인 괴로움의 최정점의 상태가 된다. 안타깝게도 모든 스타는 모두 이 단계를 경험하게 되어있다. 이것은 비단 스타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운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화려함이 대단했던 만큼 그 상실감은 보통 사람의 몇 배가 된다.
아무리 낙천적이고 행복하게 연예계 생활을 해왔다고 할지라도 이 단계에서는 연예인 대부분 상당한 충격을 경험한다. 그동안의 혜택, 인기, 명예, 실질적인 수입이 현저히 감소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자존감 수치도 급격히 낮아진다. 처음부터 자존감이 낮은 경우라도 자존감의 문제는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법이다. 하물며 최고의 정점에서 수직으로 직하강하는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무척 견디기 힘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만일 어떤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라도 벌어져 강압적으로 무대를 잃게 되는 경우, 무대를 잃은 상실감에 더해지는 사회적인 시선은 견디기 어렵다. 
잊혀진 스타가 무대를 잊지 못하는 것도 여러 가지 심리적 괴로움을 유발한다. 무대는 일종의 중독성이 있다. 비단 연예인이 아니라 해도 인생의 최고의 전성기를 못잊어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최고의 인기를 맛보았던 스타는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연예인이었던 이들은 다른 직업을 찾기도 힘이 든다. 그래서 경제적인 문제의 스트레스까지 감당해야한다. 이런 이중, 삼중의 고통은 심리적, 육체적 병을 일으킬 가능성을 준다. 이런 경우 가족들도 극도의 고통을 경험하지만 가장 괴로운 이는 연예인 당사자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일반인들보다 연예인들은 상담전문가를 만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비밀보장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상담이라는 영역마저 또 하나의 위험요소로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당연한 심리이다. 그러나 연예인들은 일반인들보다도 훨씬 많은 빈도로 심리적 고통과 우울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다. 그래서 팬들과 연예 기자들로부터 보호되고 비밀이 보장되는 심리상담 서비스가 꼭 필요한 실정이다. 

다시는 이렇게 허망하게 우리의 별이 떨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