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상담위원들의 칼럼입니다.

[박상희 소장]- part 1. " 따로 또 같이 "

  • 관리자
  • 200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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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여자, 함정에 빠지다.

- 따로 또 같이 -

화려한 도박의 도시 속에서 꺼져가는 한 알코올 중독자의 인생과 사랑을 그린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Living Las Vegas)> 이 영화는 알코올 중독자인 한 남자와 창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남자 주인공 벤은 술 때문에 가정과 직장 모두 잃고 전 재산을 털어 라스베가스로 온다. 그의 남은 소망이란 술을 마시다가 죽는 것. 세라는 벤에게 사랑을 느끼고 자신의 집에서 함께 지내자고 제의한다. 벤은 사라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을 하지 말 것을 제안하고, 자기 역시 그녀가 몇 명의 남자를 상대하는지 상관 않겠다고 한다. 
동거를 시작한 후, 사라는 벤이 떠나지 않도록 그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여자를 자신의 집에 들이는 것까지도 참는다. 두 사람은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 벤은 집을 나가버리고 그 후 세라는 대학생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벤의 연락을 받은 세라는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채 그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눈다.
영화를 통해서 표현되는 사라와 벤의 사랑은 안타깝고 애처롭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려는 그들의 순수한 사랑은 처절하게 아름답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잊지 못하는 것은 사실 그 내용이나 상황 때문이 아니다. 바로 여주인공 사라의 사랑하는 방법 때문이다. 슬픈 여자, 사라의 사랑하는 방법이란 그가 떠날까 봐 그의 죽음을 재촉하는 술을 빼앗을 수도, 심지어 다른 여자를 데리고 오는 그를 내쫓지도 못하는 연약한 모습이다. 사라는 혼자되는 것이 두려워 비겁하고 애처로운 사랑을 한다. 어쩌면 사라는 외로움과 고독 때문에 더 절망하고, 다시 혼자되길 두려워하는 요즘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주변에서 관계의 끈을 놓지 못하는 여자를 많이 보았다. ‘혼자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오히려 더 방황하는 여자를 참 많이 보았다. 어떤 여자는 분명히 헤어져야 할 때 헤어지지 못하기도 하고, 만나지 않아야 할 때 기어코 만나기도 한다. 
내가 상담했던 한 여자는 남자친구와 헤어지면 며칠 되지 않아 그 사람을 대신할 만한 남자친구를 만드는 일로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헤어진 이가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진지하게 사귀었던 남자친구라도 해도, 단 며칠동안의 외로움조차 감당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곁에 없다는 것에 불안해하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곁에 사람을 둔다. 누군가를 쉽게 만나기 위해 나이트클럽 등을 전전하며 곁에 있어줄 상대를 찾기도 한다. 다시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길 때까지 일회용 만남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런 만남과 헤어짐의 패턴이 계속해서 반복될 때도 있었다. 
또 다른 경우도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경우로, 맞고 이용당하고 심지어 버림받지만 그 남자를 떠나지 못하는 여자들이다. 물론 결혼한 여자의 경우 자녀나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미혼의 커플 중에도 이런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내가 만나본 그 여자는 거의 5년이나 사귀어온 남자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그녀와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주말이면 자주 선을 보고 여자를 소개받았다. 기가 막힌 것은 이런 그의 행동을 그녀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 남자를 떠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그녀는 임신 중절까지 경험하게 됐지만 이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고 말았다. 그녀는 엄청난 상처를 지닌 채 혼자가 되었고 결국 자살까지 시도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의존심이 너무 강해 그 증세가 병적인 상태에까지 이른 경우, 이상심리학에서는 ‘의존적 인격 장애(Dependent Personality Disorder)’로 분석하기도 한다. 의존적 인격 장애는 타인의 충고와 보호 없이는 일상적인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지지와 칭찬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반대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또한 혼자서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수행하기 어려워하는 등의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타인의 보살핌과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이든 하려고 하고, 친밀한 관계가 끝났을 때 필요한 보호를 얻기 위해 즉시 다른 사람을 찾는 불안감도 드러낸다. 
이런 사람들의 내면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행동은 자기 자신의 의사결정에 의한 것이지, 결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나 여건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의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분위기, 주변 여건, 무슨 영향 때문이라는 등의 핑계를 대려고 한다. 남자친구가 떠나서 슬프고, 어떤 삶의 의욕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방황할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그 상대방에게만 책임이 있다며 스스로 힘없는 희생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심각할 정도로 의존적인 사람은 전문적인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이런 성격장애는 안타깝게도 남자보다 여자에게 흔히 나타나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치료를 받는다면 그 결과가 비교적 좋다는 사실이다.
그 정도에 있어서 차이는 있겠지만, 실제로 많은 여자가 만남과 헤어짐에 있어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신중하게 만나고 균형을 맞추어 사귀다가, 때로는 단호하게 헤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주변에선 쉽게 만나고 무분별하게 사귀거나, 헤어져야 할 때도 그러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혼자 잘 지낼 수 있는 여자가 함께 있는 것도 잘한다. 혼자 있는 것에 서툰 여자는 함께 있는 것도 잘할 수 없다. 인간관계란 자연스럽고, 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집착하거나 소유하려는 관계는 결코 즐겁지 않다. 혼자여야 할 때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 이것은 즐거운 인간관계의 기본이 된다.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화음이 마음에 와 닿을 때도 있고, 피아노 독주곡이나 플루트 독주곡이 귀에 잘 들어올 때도 있다. 혼자여도 아름다울 수 있는 여자는 둘 또는 여럿이 함께 있을 때도 아름답다. 
아주 가까운 사이라도 각자 아름다울 수 있는 거리는 분명히 있다. 따로 잘 있을 수 있는 여자가 같이도 잘 있을 수 있다.


<< 헤어져야 할 때는 헤어져라. 혼자 있어야 할 때와 함께 있어야 할 때를 구분하라.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함께도 잘 살 수 있다. >>